관조적 실천으로서의 긴에이 (吟詠) -이토캠퍼스의 개발에 따라 사라져 간 모든 생명체의 혼을 찾아서

관조적 실천으로서의 긴에이 (吟詠)

-이토캠퍼스의 개발에 따라 사라져 간 모든 생명체의 혼을 찾아서

 


관조적 실천으로서의 긴에이 (吟詠)-이토캠퍼스의 개발에 따라 사라져 간 모든 생명체의 혼을 찾아서

 

 

본 퍼포먼스는 Devora Neumark 선생님과 혼다 테루히코(本田 陽彦)의 공동 프로젝트로서 일본의 전통예능인 ‘긴켄시부’의 ‘긴에이’를 통하여 ‘지구환경위기’에 직면하여 생겨난 깊은 슬픔에 대한 치유 및 어머니인 지구와 그 안에서살아가는 생명체를 포함한 제반 생명의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의미의 퍼포먼스입니다.

긴켄시부도(吟剣詩舞道)란, 긴에이(吟詠), 켄부(剣舞), 시부(詩舞)로 이루어진 일본 전통예술의 총칭입니다. 시가를 독특한 멜로디에 맞추어 낭송하는 「긴에이」, 긴에이에 맞추어 칼 또는 부채를 이용하여 춤을 추는 「켄부」, 부채를 이용하여 춤을 추는 「시부」는 여러 가지 수단으로 일본의 「도(道)」를 표현해냅니다.

공연자인 저 혼다 테루히코는 긴에이를 20년간 계속해 온 긴에이 예술가이자 명상 수련자로서, Mindfuless (명상) 등의 관조적 실천(contemplative practices)에 관한 연구를 중심적으로 수행해 온 연구자입니다.  본 프로젝트는 여러 면에서 저의 예도(藝道)와 학술연구가 교차하는 지점을 맞이하여, 관조적 예술(Contemplative art)으로서의 긴켄시부도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에 있어 하나의 이정표라고 하여도 무방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일련의 퍼포먼스가 규슈대학교 이토캠퍼스의 건설로 인한 개발의 결과로 사라져 간 무수한 작은 생명에 대한 대한 저의 슬픔과 그들 생명체들의 슬픔, 어머니 지구의 슬픔에 대한 치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큐슈대학교에서는 2005년부터 2018년에 걸쳐 일본 최대의 캠퍼스 부지면적을 가진 이 이토캠퍼스의 건설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개발”에 따라 연구환경의 내실화가 이루어지는 한편, 자연환경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대규모 건설로 인하여 야생의 산은 “정리”되고 그곳에 살고 있던 모든 생명체들은 살 곳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아스팔트로 다져진 새로운 “대지”는 여름이 되면 표면 온도가 높아져서 그 표면에 무수히 많은 공벌레와 지렁이의 사체가 즐비하게 늘어져 있곤 합니다. 저는 주차장에서 이토캠퍼스로 “걸어가며 명상”을 하곤 하는데, 가는 길에 그 주검들을 맞닥뜨릴 때마다 깊은 슬픔과 죄책감이 마음 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습니다. 그 광경은 마치 대지가 거대해진 슬픔을 나에게 전하는 듯 느껴졌습니다. 대지로부터 나에게 전달된 이 메시지는 내 마음 속 깊이 스며들어 온 소위 “인간에 의한 대지의 식민지화”에 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이렇듯 대학의 "개발"이 초래한 무수한 작은 생명들의 죽음은, 내 마음에 사라지지 않는 응어리를 남겼습니다. 저는 연구에 지칠 때면 심심치 않게 조용한 장소를 찾아 명상을 합니다. 그럴 때면, 가끔 – 아마도 어떤 위상에 내 정신이 연결될 때- 대지에서 잃어버린 생명에 대한 깊은 슬픔과 같은 무언가를 대지 깊숙한 곳에서부터 느끼는 것입니다. 나는 다만 이러한 감각을 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일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만, Devora Neumark 선생님과의 해후에 의하여 이러한 감정을 치유할 계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Devora 선생님은 기후를 위한 정의(Climate justice), 관조적 실천(Contemplative practice), 공연적인 몸짓(Performative gesture)에 관하여 디지털 아트의 가능성을 연구하는 연구자이자 예술가이십니다. 그 분을 만나 뵙게 된 것은 2019년 8월 미국의 스미스대학에서 개최되었던 The Center for Contemplative Mind in Society(CMind)주최의 서머세션에서였습니다. 큐슈대학교에서 ‘관조적 교육학’으로 불리우는 교육학에 관하여 연구하고 있는 저는 그 연구의 일환으로 그 세션에 참가하게 된 것입니다.

관조적 교육학은, 최근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는 명상(Mindfulness)나 공감(compassion) 등의 관조적 실천(contemplative practice)을 수업에 적용하여 학생이 배우는 대상에 대한 깨달음(awareness)을 기름으로써 정신적인 인간을 생성하는 것을 교육이념으로 삼고 있습니다. 동 교육학의 주류를 견인하는 것이 CMind이며 매년 개최되는 서머세션에서는 다양한 전문분야에서 관조적 교육을 추구하는 연구자가 모여 일주일에 걸쳐 이런저런 경험과 지혜를 서로 공유하도록 합니다.

Devora 선생님의 워크숍(“Cultivating Environmental Emergency Responsiveness: Mindfulness and the Practice of Performance Art”, “환경적 위기상황에 대한 대응을 일굼: 행위 예술의 연습과 명상”)에서는 지구환경의 위기에 대한 깨달음, 그로 인한 깊은 슬픔을 달래며 관여해 나가는 것에 대해서 예술적 관점에서 의논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이런저런 지구환경의 위기와 슬픔의 경험을 공유하고 관련된 예술과 퍼포먼스에 대하여 논의하였습니다. 서로 공유한 내용은 물이나 동물에 관한 것 등 다양했습니다만 참가자들은 주의 깊게 다른 모든 참가자의 경험에 귀를 기울여 그들의 내면을 통해 그들의 경험을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개방성과 신뢰성, 그리고 자애로운 공감에 힘입어 저는 앞서의 캠퍼스 개발의 결과로 일어난 무수한 작은 생명들의 죽음에 대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친구들이 흘리는 눈물은 제가 그 경험에 따른 마음의 응어리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설 수 있도록 지지해 주었습니다.

저는 일주일간 마음이 가득 차고 잔잔하지만 자극이 되는 나날을 보낸 후, 서머세션의 마지막 날에 자유 무대에서 일본 전통노래를 낭송했습니다. 물론 일본어로 된 노래여서 가사의 의미는 전달되지 않았습니다만 관조적 교육학 연구자들은 비언어적으로 저의 긴에이를 “직접적”으로 경험함으로써 긴에이를 “관조”하여 주었습니다. 그것은 언어로 환원되지 않는, 사고에 의하지 않는 “완전히 다른 방법에 의한 지식의 습득”이었습니다. 그들로부터 받았던 피드백은 통찰이 넘쳤으며, 관조적 예술로서의 긴에이의 가능성을 재확인할 수 있었던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서머세션으로부터 정확하게 1년이 지나려 할 때, Devora 선생님으로부터 “자연환경의 위기에 직면함에 따른 마음의 상처(environmental trauma) - Mindfulness, 회복력, Performative gesture”에 관한 디지털 아트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공동 퍼포먼스 프로젝트에 대한 권유를 받았습니다. 거기서 제가 탐구하는 관조적 실천으로서의 긴에이- 제가 일본의 주된 영적 전통에서 나온 무심(무신, 無心, wú xīn, no-mind)의 철학을 가지고 고려해 왔던-를 통하여 환경문제에 따른 깊은 슬픔(environmental grief)를 치유하려는 플랜을 본격적으로 짜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Devora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하여 이 슬픔은 그것을 경험하고 있는 인간에게 있어서만 생기는 것이 아님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사라진 생명체들은 물론이고 내가 대지로부터 슬픔의 메시지-지면에 널브러진 무수한 작은 생명체들의 죽음에 따른-을 받았다고 느낀 것처럼 어머니인 대지도 슬픔을 체험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 관조적인 아트 프로젝트에 있어 저는 저의 존재를 활짝 열고 저의 경험으로 인한 자신의 슬픔이나 응어리뿐 아니라 사라져 간 생명체들과 어머니 지구를 치유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나의 존재를 내어주고 모든 존재의 고통을 자애의 요람 안으로 끌어안는 것이 필요하다고 직관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지금의 나에게 있어 너무나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을 내주고 자애의 요람을 생겨나게 하기 위해서는 내 안의 모든 노여움을 풀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대단히 부끄럽게도 인간으로서 속세에 살아가는 저로서는 불가피하게도 분노의 에너지를 받아들여버렸습니다만, Environmental grief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나의 모든 노여움을 해방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즉 이 프로젝트는, 나 자신의 노여움의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여 나 자신을 치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 프로세스에 있어 마음의 장애물이 점차 느슨해져 가고 거기서 씻겨져 드러난 것은 소위 “노출되어버린 취약함”이었습니다. 저는 자아의 해체를 반복하면서, 날이 갈수록 자아의 틀이 느슨해져 감을 느꼈습니다. 새로운 자아의 탄생을 기원하면서 가능한 한 인내심을 굳히고 관조적 실천에 임하였습니다.

이 과정을 병행하는 동시에 긴에이 퍼포먼스를 맞이하여 읊을 시를 선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시를 조사하였으나 적당한 것을 찾을 수가 없어 궁리하던 중 서법의 스승이자 요가 수행자이신 키무라 카요 선생님이 다음의 시를 소개하여 주셨습니다.

 

「君が行き 日長くなりぬ 山尋ね 迎へか行かむ 待ちにか待たむ」

(그대가 떠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났네. 그대를 만나기 위해 산으로 찾아가야 할까, 여기서 기다려야 할까?)

 

일반적으로 이 시는 이와노히메 황후 (磐姫皇后) 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는 오토모노 야카모치 (大伴 家持)가 편찬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일본 시집인 『만엽집(万葉集)』에 수록된 것입니다. 그녀의 네 곡의 노래는 그녀의 부군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표현한 것으로 주로 해석됩니다만, 몇몇 조사가들은 다르게 설명합니다. 일본의 저명한 민속학자인 시노부 오리쿠치 박사에 의하면 시의 내용인 “야마타즈네(山尋ね: 산을 찾다)”는 “타마고이 (魂乞い: 혼백을 청함)”의 의미로 연결된다고 합니다. 즉 대체불가능한 사람의 영혼을 내 곁으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이 “고이(乞い)”는 “코이 (恋: 사랑, 그리움)”와 연결되어 “그대를 그리워한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더 높은 산으로 혼백을 찾아가는 것으로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학술적 연구는 차치하고서라도, 마침내 저는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찾았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저는 이 직감을 소중히 여겨 이 시로 제 퍼포먼스의 주제를 결정하였습니다. 이 결정은 저의 즉흥적인 “진심”과 “정서”에 따른 것입니다.

허나 퍼포먼스 당일까지 제 마음의 날씨는 제가 목표로 한 수준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 때 일본에서는 제 마음을 반영하듯 태풍 9호와 10호로 인하여 크나큰 피해가 속출하였습니다. 저 역시 제 인생에서 복잡한 문제에 직면해 있었기 때문에 때로는 동요하였고 “관조적 긴에이 수행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일 기모노를 입고 이전에 “Environmental grief”를 경험한 바로 그 자리에 서서 조용히 합장을 하고 기도를 바치니 마음의 결은 점차 섬세해져 가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자비심이 스스로 일어나 내 존재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처음에는 거칠었던 마음도 퍼포먼스가 진행될수록 점차 미세한 에너지로 변환되는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잡념 대신에 평화로운 고요함이 주위를 감싸며, 저는 사라져 간 생명체에 대한 순수한 속죄와 애도, 우리 인간과 어머니 지구에 대한 치유, 일체의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안온의 성취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모든 기도와 긴에이를 끝냈을 때, 강하게 나타난 것은 “개발”에 대한 죄책감이 아니라, 잃어버린 생명을 포함한 일체의 생명에 대한 애정어린 동정심이었고, 저는 저의 존재를 넘어선 동정심과 평정심을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퍼포먼스를 끝내고 일상 생활로 돌아와서 마음의 양태가 때로 이전과 같이 거칠어지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마침 이 문장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제 마음을 관찰해 보면 그 날 퍼포먼스를 하면서 느꼈던 동정심과 평정심은 이미 사라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대신 거친 마음의 파도나 마음 안의 갖가지 분노의 씨앗이 진동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렇듯이 퍼포먼스와 자비로운 경험이 나나 어머니 지구를 드라마틱하게 변화시켰을 리가 없습니다. 마법과도 같은 기적을 일으키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퍼포먼스를 하던 그 순간, 저는 확실히 치유와 구원을 경험했으며 어머니 지구 역시 동일한 경험을 했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마치며 이 멋진 프로젝트에 초대해 주신 Devora Neumark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분과 CMind의 서머세션 동료들과 이어준 나의 연구, 그리고 그 연구와 CMind의 서머세션으로 이끌어 주신 세빌라 류(瀬平劉) 안톤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바칩니다! 제가 선정한 시를 알려주신 키무라 카요(木村 迦葉) 선생님께도 감사를 바칩니다.  또한 어릴 때부터 저를 긴에이 예술가로 길러 주신 긴에이 스승님 사이토 유코(齋藤 裕晃) 선생님, 그리고 회장님이신 이토 코세키(伊藤 晃績)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글을 한국어로 번역해 준 친구 한수연 씨, 중국어로 번역해 준 동료 마 씨, 영상 편집에 협력해준 DESIGN COMMUNICATION의 토요시마 요헤이(豊嶋 洋平) 씨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나의 관조적 여행을 지지해준 가족들에게, 특히 어머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본 프로젝트의 퍼포먼스 작품이 이 세상의 행복한 미래를 위한 씨앗이 되기를.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이 건강하고 안전하며 평화로이 행복하기를.                                   

                                                    혼다 테루히코 (토요시마) 올림